르호보암
하나님과 백성을 두려워하지 않은 왕
르호보암은 솔로몬의 아들이다. 솔로몬과 암몬 여인 나아 마사이에 태어났다. 백성들은 르호보암에게 아버지 솔로몬의 강제 노역과 중과세 정책을 완화시켜달라고 요구하였다. 조건부 왕으로 모시겠다는 것이었다. 백성을 대표하는 지도자들은 아들이 아버지의 정책을 계승하는 것이 두려웠다.
르호보암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쓰임받았다. 그러나 하나님께 쓰임 받는다고 하더라도 악한 일에 쓰임 받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일 수 없다. 그는 군주와 신민 사이의 관계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백성들은 군주 마음대로 부려도 좋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다윗은 무슨 일이든 먼저 하나님께 그 뜻을 묻는 신앙인이었고 솔로몬 역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왕위에 올랐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위대한 성전 건축이라는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이 모든 과정을 하나님과 무관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원래 대신들이나 젊은 관료들을 찾기 전에 하나님 앞에 먼저 엎드려야 하는데 르호보암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방신들을 위한 산당들을 세우고 백성들을 우상 숭배하게 하였고, 결국 하나님도 섬기고 이방신들도 섬기는 혼합종교적 신앙에 빠졌다.
여로보암
전형적인 악한 왕
에브라임 지파에 속한 사람인 여로보암은 북부에 속한 지파들과 예루살렘을 중심한 지파들 사이에 정치적 달등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솔로몬은 수많은 이방 여인들을 아내고 삼아 자신뿐 아니라 온 나라가 혼합종교 신앙을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샀다. 그 하대님께서 그를 대적하는 세력들을 사방에 일으켜서 그를 괴롭게 하셨는데 여로보암이 그중 한 세력이었다. 여로보암으로서는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남 왕국 유다와 맞설 수 있는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다급한 과제에 직면하여 이에 바른 대처를 해야 했다. 그에게는 종교적인 문제가 더 크게 부각되었다.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예식과 절기를 다른 것으로 대치시킴으로써 백성들을 미혹케 하였다. 그의 우상숭배 죄는 열왕기서 기자가 후대의 이스라엘 왕들의 죄를 말할 때 늘 빗대어 말하는 하나의 표준적 죄가 되었다.
아비야&아사
르호보암의 아들과 손자
- 야비야
르호보암은 17년 동안 남쪽 유다의 와으로 있으면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 조상들이 행한 모들일보다 지나쳐 그 범한 죄로 하나님을 노엽게 하였다. 아비야가 왕이 된 후에도 여로보암과 전쟁을 했다. 비록 3년이라는 짧은 기간밖에 통치하지 못했지만 북쪽의 전쟁은 승리를 이끌었다.
- 아사
아비야가 죽고 그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그의 아들 아사는 41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선정을 베풀어 유다의 경건한 왕들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그가 행한 일들은 그 조상들이 만들어 세운 모든 우상들을 파괴하고 동성애를 즐기는 남자들을 추방했으며 그 어머니가 아세라상을 세웠다는 이유로 어머니의 위를 폐하기도 하였다. 우상을 없애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사는 용기를 내어 그 일을 감행하였다. 그러나 집권 36년에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침공해 왔을 때는 아사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대신 아람(지금의 시리아) 왕에게 각종 보화를 보내서 동맹을 맺음으로써, 사람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실수를 하게 된다. 아사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헌신은 마음과 뜻을 다하고 몸숨까지도 내놓을 수 있을 만큼 완전해야 한다는 것과 어떤 상황에서라도 변함이 없어야 한다.
바아사&엘라
여로보암의 아들과 손자
- 바아사
하나님께서 여로보의 집을 멸절 시키고 왕위에 오른 바아 사는 하나님의 징벌의 도구가 되어 여로보암의 집을 파멸시켰다. 그는 왕만 죽이고 왕위만 빼앗은 것이 아니라 여로보암의 집에 속한 사람은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모두 죽였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른 바아사는 반역이라는 악한 방법을 통해 그 귀에 올랐고 이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방법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버리을 받은 여로보암의 길을 그대로 답습했다. 바아사는 계속 우상숭배와 악을 행하는데 떠나지 못했다. 이것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선지자 예후가 그를 책망했다. 예후의 예언은 그의 통치가 24년으로 끝나고 그의 아들 엘라가 그 위를 이어 왕이 된 지 2년 만에 이루어졌다.
- 엘라
바아사의 24년 통치가 끝나고 그의 아들 엘라가 그를 이었다. 엘라가 그 아버지의 악한 길에서 떠나지 않고 낮부터 신하의 집에서 마시고 취했을때 그의 군 사령관인 시므리가 모반하여 엘라를 죽이고 대신 왕에 올랐다.
여로보암의 왕조는 2대에 걸쳐 24년 만에 무너지고 바아사의 왕조는 2대에 걸쳐 26년 만에 막을 내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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