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라는 말은 원래 중국의 고전인 '주례'에서 형옥과 금령을 담당하는 관직의 명칭이다. 중국어로 성경이 번역될 때 영어 Judges라는 단어를 그렇게 옮긴 것인데 우리 성경에서도 그래도 차용된 것이다.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표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원래 히브리어로 shophet이고 따라서 '판관'이라고 번역할 만하다. 그러나 실제로 사사기에 나오는 인물들의 활동을 보면 백성들의 송사를 듣고 재판을 행한 기록은 드보라를 제외하고는 거의 찾아보기가 어렵다. 사사기가 이들을 주목한 것은 판관으로서 어떤 직분을 수행한 것보다는 오히려 여호와에게 특별한 능력을 부여받아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었던 카리스마적 지도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사기에는 모두 12명의 사사가 나온다. 이 가운데 6명은 활발한 활동을 해서 '대사사'라고 하고 나머지 6명은 그렇지 못해서 '소사사'라고 한다. 그들이 활동한 기간은 200년 가까이 되는데 그 기간 동안에 있었던 사사가 물론 그들이 전부는 아니다. 당연이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각 지파들의 지도자가 있었고 사사기에 나오지는 않지만 그 뒤에 활동했던 엘리아 사무엘도 사사였다. 이 12명의 사사들이 구체적으로 언제 활동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은데 대체로 시대순에 따라 서술되었겠지만 그들이 꼭 순서대로 등장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 사사는 이스라엘 인들이 거주하는 전 지역을 무대로 활동했던 것도 아니고 12지파 모두의 지도자로 인정받았던 것도 아니다. 그들은 자기가 속한 지파의 지도자로 활약했고, 때로는 인근 몇 지파들을 규합하여 가나안 주민들 혹은 외적들과 싸웠다.
여기에서는 이들 12명의 사사들 가운데 '소사사'로 알려진 샴가르, 톨라, 자이르, 입잔, 엘론, 압돈에 대해서는 생락하고 소위 '대사사'라고 불리는 6명 즉 옷니엘, 에훗, 입다, 드보라, 기드온, 삼손에 대해서만 그들의 활동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그것을 통해서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처했던 사회적, 종교적 상황이 어떻게 변화해갔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사사기에 나오는 첫번째 사사인 옷니엘은 갈렙과 같은 그니스 사람이었다. 흥미롭게도 그니스라는 집단은 원래 에서의 후손인 에돔 족속이지만 갈렙이 유다 지파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그의 후손들은 유다 지파로 인정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을 하는 도중에 다른 종족 출신의 사람들을 그 안에 받아들여 동화시켰던 사실을 보여준다. 옷니엘은 갈렙보다 나이가 어려 '동생'이라고 표현되었으며 헤브론 근처의 가나안 도시 기럇세벨을 성공적으로 공격하여 갈렙이 딸과 혼인한 인물이었다. 성경은 옷니엘에 대해서 매우 간략한 기록만 남기고 있지만 그것은 사사들의 등장과 홀동 그리고 그 의미를 잘 보여주는 내용이다.
행악->징벌->회개->사사의 등장->평화->행악이라는 패턴은 사사기 전편을 통해 되풀이 되고 있다. 옷니엘의 뒤를 이어 사사로 언급된 에훗의 행적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의 행악에 진노한 여호와가 모압 왕 에글론을 일으켜 암몬과 아멜렉 등의 세력을 규합하여 '종려나무 성읍' 곧 여리고를 함락하고 18년간 지배하게 한 것이다. 마침내 이스라엘 자손들이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해서 한 구원자를 내세웠는데 그가 바로 베냐민 지파의 에훗이었다. 베냐민이라는 말은 원래 '오른쪽의 아들'이라는 뜻인데 엉뚱하게도 그는 왼손잡이였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왼손을 사용하는 것을 천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베냐민 지파에는 그 집단의 명칭과는 달리 의외로 왼손잡이가 많았다. 왼손잡이의 공격은 통상적인 오른잡이오ㅓ는 달리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상대방은 금세 당황하고 공격에 쉽게 노출되는 경향이 있다. 에훗의 일화는 왼손잡이가 이처럼 적의 예상치 못했던 기발한 습격으로 적을 쓰러뜨리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에훗은 에글론 왕에게 공물을 바치러 가면서 오른편 다리의 옷안에 길이 1규빗(46센티)길의의 양날 검을 숨기고 들어갔다. 오른손잡이라면 칼을 쉽게 뽑기 위해 보통 왼쪽 허리나 다리에 차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오른편 다리 안쪽에 짧은 칼을 숨겼기 때문에 들키지 않았고 그와 같은 무기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왕에게 은밀하게 고할 것이 있다고 속여서 홀로 왕이 있는 서늘한 다락방으로 가서 가까이 다가가 왼손으로 칼을 꺼내 왕을 찌르니 칼끝이 등까지 관통했다. 그는 에브라임 산지로 도망쳐 거기서 이스라엘인들을 규합한 뒤 요르단 강나루를 막아 도주하는 모압인 1만 명을 죽였다. 이로써 모압이 항복하고 이스라엘은 80년 동안 평화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가나안 지방에는 일종의 힘의 공백이 생기게 되었다. 옷니엘의 경우 북방에서 아람세력이 밀고 내려오고 에훗의 경우는 동쪽에서 모압이 가나안 중앙 산지인 에브라임 지역으로 들어와 점령했던 것이다. 원래 요르단 강 동편의 모압 평원은 모세가 생전에 정복을 완료해서 르우벤 지파에게 그 땅을 주었던 곳이다. 그런데 에훗의 일화는 그곳의 모압이 다시 흥기 하여 강 서쪽을 80년간 지배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르우벤 지파는 사실상 그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하고 그 후 더 이상 언급되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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