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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신약 인물로 보는 성경 (이용원 저 포함)

아비가일 : 지혜로 분노를 이긴 여인, 성경 속 진정한 리더십의 얼굴

by 건강한파프리카 2025.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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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비가일은 누구인가 – 위기 속 지혜를 택한 여인

성경 속 여인 중에서 ‘지혜’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흔치 않다. 그러나 아비가일은 예외다. 그녀는 다윗 시대의 한 사건에서 갑작스럽게 등장하지만, 짧은 이야기 속에 강한 인상을 남기고 사라지는 인물이다. 그녀는 단순히 아름다운 여인이 아니었다. 분노로 타오르던 다윗의 칼을 멈추게 했고, 어리석음으로 가득한 남편을 대신하여 가정을 살렸으며, 나중에는 이스라엘 왕의 아내가 되는 여정까지 걷게 된다. 아비가일은 외적으로도 지혜롭고, 내면적으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산 인물이다.

 

아비가일의 이야기는 사무엘상 25장에 나온다. 당시 다윗은 사울 왕의 핍박을 피해 광야에서 유랑하는 중이었고, 엔게디와 마온 근처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나발’이라는 큰 부자, 양떼와 염소를 수천 마리 소유한 자가 등장한다. 그의 아내가 바로 아비가일이었다. 성경은 나발을 “심히 완고하고 행실이 악한 자”(삼상 25:3)라고 기록한다. 반면 아비가일은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웠다”고 소개된다. 이 짧은 구절만으로도 두 사람의 대조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다윗은 나발의 목자들이 광야에서 해를 입지 않도록 지켜주었고, 그 보답으로 식량을 요청한다. 그러나 나발은 “다윗이 누구냐?”라며 무례하게 거절한다. 이것은 단순한 거절이 아니라, 다윗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모욕하는 행위였다. 다윗은 분노했고, 칼을 들어 나발의 모든 남자들을 죽이려 한다. 바로 이 순간, 아비가일이 등장한다. 그녀는 급히 음식을 준비하여 다윗을 찾아가고, 그 앞에 엎드려 자신이 잘못했다며 눈물로 간청한다.

 

그녀는 다윗에게 “나발은 그의 이름과 같이 미련한 자니이다”(삼상 25:25)라고 고백하며, 복수의 피를 흘리지 말라고 간청한다. 그녀의 말은 단순한 사과가 아니다. 그녀는 다윗이 장차 하나님께서 왕으로 세우실 자임을 알고 있었고, 그 영광을 더럽히지 말라고 요청한 것이다. 그녀의 입에서는 당대 여성에게 기대하기 힘든 통찰력 있는 신학적 고백이 흘러나온다. “여호와께서 내 주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시리니…”(25:28) 그녀는 하나님이 하실 일을 믿고, 다윗의 감정을 붙들어 맨다.

이 장면은 단지 ‘지혜로운 중재’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아비가일은 위기 상황 속에서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그녀는 민첩하고, 책임감 있었고, 진실했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 그 믿음이 분노로 달려가던 다윗의 칼을 멈추게 만든 것이다.

2. 아비가일의 지혜 – 감정을 이끄는 영적 리더십

다윗은 아비가일의 말을 듣고 분노를 거두며 이렇게 말한다. “네 지혜를 칭찬하노니… 오늘 내가 피를 흘리는 일을 막았도다.”(삼상 25:33) 이는 아비가일의 말이 단지 감정을 누그러뜨린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의 뜻을 이뤄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녀는 왕의 길 위에 하나님의 뜻을 세운 여인이었다.

아비가일은 자신의 말로 다윗의 행동을 바꿨다. 이는 성경에서 매우 드문 일이다. 대부분의 여인들은 사건의 수동적 배경이 되거나, 침묵 속에 등장하고 사라지지만, 아비가일은 달랐다. 그녀는 말을 했다. 그러나 그 말은 공격이 아니었고, 설득이었으며, 회복이었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말의 리더십’을 생각하게 한다. 아비가일은 말로 권력을 얻은 것이 아니라, 말로 위기를 껴안고 바꿨다. 그녀는 조용하지만 강력했다. 분노에 눈이 먼 다윗 앞에서 진실로 대면한 그녀의 용기와 절제, 신앙 고백은 시대를 초월하는 깊은 울림을 준다.

이후 나발은 술에 취해 자초한 위기를 모르고 있었고, 다음 날 아비가일에게 모든 상황을 전해 듣고는 심장마비처럼 마음이 굳어져 열흘 후에 죽는다. 하나님께서 직접 심판하신 것이다. 다윗은 이 소식을 듣고 아비가일을 아내로 삼는다. 이 장면에서 성경은 다시 한번 아비가일의 존재를 강조한다. 단지 미모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지혜와 신앙 때문이다. 다윗은 단지 한 여인을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통해 그의 왕국에 또 하나의 믿음의 기둥을 세운 것이다.

아비가일은 성경 전체에서 말과 행동으로 위기를 뒤집은 소수의 인물 중 하나이다. 그녀는 다윗의 분노를 꺾었고, 한 집안을 살렸으며, 그 결과로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 받았다. 그녀의 이야기는 짧지만, 그 울림은 깊다. 이는 단지 여성 리더십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에서 ‘참된 리더십’이란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거울이다.

3. 아비가일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위기 앞에 서 있다. 감정은 쉽게 타오르고, 말은 쉽게 사람을 찌른다. 판단은 거칠고, 대화는 격해진다. 이 시대에 아비가일은 매우 필요한 인물이다. 그녀는 두려움이 아닌 믿음으로 움직였고, 분노가 아닌 지혜로 다가갔다. 그녀는 화해를 선택했고, 말로 하나님의 뜻을 전했다.

그녀의 모습은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세상 속에서 어떤 말과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단순한 침묵도 아니고, 무작정의 대결도 아니다. 믿음에 근거한 지혜로운 말,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중재자적 자세, 그것이 아비가일의 방식이었다.

또한 아비가일은 ‘자기 문제’만 해결하려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공동체 전체, 가족 전체를 위한 결단을 내렸다. 다윗을 살리고, 나발의 집을 살리고, 결국 다윗 왕국의 미래에 기여한 셈이다. 이는 진정한 중보자의 모습이다. 자신의 안위보다 공동체의 생명을 더 소중히 여긴 선택이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짧지만, 우리는 이 안에서 ‘성경적 리더십’, ‘지혜로운 말’, ‘신앙 안의 용기’, 그리고 ‘하나님 앞에 굽히는 태도’를 모두 배울 수 있다. 세상의 지혜는 때로 논리와 힘을 앞세우지만, 성경의 지혜는 진실과 경외로 움직인다. 아비가일은 그 증거다.

그녀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번의 말이 생명을 살렸고, 하나님의 뜻을 드러냈다. 오늘 우리도 그 한 마디를 준비해야 한다. 불타는 세상 속에서 진심을 담은 말, 기도로 덧입힌 한 문장이 사람을 살리고, 공동체를 일으키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다.

 

말로 이룬 믿음의 리더십, 아비가일을 닮고 싶다

 

아비가일은 성경 속 수많은 인물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인물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극적인 장면 속에서 가장 인간적이고, 동시에 가장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선 사람이다. 그녀는 지혜로 행동했고, 신앙으로 결단했으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결과를 맡겼다.

 

그녀의 이야기는 특히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언어와 태도, 위기 앞의 자세, 가정과 공동체 속 신앙인의 위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아비가일처럼 칼을 든 사람 앞에서 말을 꺼낼 수 있을까? 분노가 휘몰아치는 시대에 지혜로 설 수 있을까?

그녀는 무명의 여인이었고, 어리석은 남편의 아내였으며, 위기 한가운데 놓인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지혜로 살았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했으며, 결국 다윗 왕국의 역사의 일부가 되었다.

 

우리의 말이, 기도가, 믿음이 그런 변화의 통로가 되기를 바란다. 오늘, 내가 꺼낼 한 마디가 아비가일처럼 사람을 살리고 하나님을 높이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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