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박국: 하나님께 질문한 선지자, 고통 속에 찬양을 택한 믿음
1. 하박국은 누구인가 – 질문으로 시작한 믿음의 여정
성경을 읽다 보면 이름은 익숙하지 않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선지자가 있다. 하박국이 바로 그런 인물이다. 그는 구약의 소선지자 중 한 명이며, 그의 이름을 딴 '하박국서'는 단 세 장밖에 되지 않는 짧은 책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고통, 불의, 신앙, 인내, 그리고 궁극적으로 찬양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영적 여정을 응축한 진실한 고백이 담겨 있다.
하박국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껴안다', '붙잡다'라는 뜻을 지닌다. 그의 이름처럼, 그는 하나님을 껴안은 선지자였다. 단지 말씀을 대언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님께 질문하고 씨름하고 부딪히며, 끝내 하나님을 껴안은 사람이다. 그는 우리에게 믿음이란 결코 쉬운 길이 아님을 보여준다. 오히려 질문하고 방황하고 기다리는 과정 속에서 더욱 깊어지는 것임을 말해준다.
하박국이 살았던 시대는 바벨론이 점차 강성해지고, 유다 왕국의 도덕적·영적 타락이 심화되던 때였다. 그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불의와 폭력을 보며 하나님께 울부짖는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찌된 일입니까?"(하박국 1:2) 그는 마치 오늘날의 우리가 겪는 질문, 즉 "왜 하나님은 침묵하시는가? 왜 의인은 고난받고 악인은 형통한가?"라는 절박한 심정을 그대로 토해낸다.
이처럼 하박국은 선지자이지만 단순히 예언을 선포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묻고 또 묻는 질문자였다. 그는 하나님의 정의에 의문을 제기하며, 신앙의 길 위에서 실존적인 씨름을 이어간다. 그러나 이 책은 의심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마침내 고통 속에서도 믿음을 선택하고, 절망 속에서도 찬양을 고백하는 자로 변화된다.
2. 하박국서의 구조 – 질문에서 찬양으로 향하는 영혼의 여정
하박국서는 세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구조 자체가 영적 여정을 상징한다. 의심과 질문으로 시작하여, 응답과 계시를 거쳐, 마침내 신뢰와 찬양에 이르는 여정이다.
1장 – 질문과 탄식
하박국은 하나님께 정직한 질문을 던진다. 왜 악인이 득세하는가? 왜 의인은 침묵 속에 고통받는가? 그는 하나님께서 왜 악을 허용하시며, 왜 정의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만 계시는지를 묻는다. 이 질문은 하박국만의 것이 아니다. 모든 시대, 모든 신앙인에게 반복되어온 질문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 질문에 응답하신다. 하지만 그 응답은 하박국이 기대한 방향이 아니다. 하나님은 "보라, 내가 바벨론을 들어 너희를 심판하겠다"고 말씀하신다. 즉, 유다의 죄악을 심판하시되, 그것이 바벨론이라는 더 큰 악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하박국은 더 혼란스럽다. "어찌하여 더 악한 자로서 의로운 자를 삼키게 하시나이까?"(1:13)
이 대목에서 우리는 인간의 논리로는 하나님의 섭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음을 배운다.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하는 방식으로만 일하시지 않는다. 그러나 하박국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지켜보겠다고 결심한다. 그의 질문은 항의로 끝나지 않고, 기다림으로 이어진다.
2장 – 하나님의 응답과 믿음의 원리
하박국은 망대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린다. 그리고 하나님은 응답하신다. 바로 그 유명한 말씀,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2:4)이다. 이것은 단지 하박국 개인에게 주신 말씀이 아니라, 구약 전체를 넘어 신약의 핵심 교리로 이어지는 말씀이다. 바울은 로마서 1장과 갈라디아서 3장에서 이 말씀을 인용하며, 복음의 정수를 풀어낸다. 히브리서 10장 또한 이 말씀을 받아들여, 고난 중에도 믿음으로 견디는 성도의 삶을 조명한다.
여기서 하박국이 얻은 깨달음은 단순하다.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다. 하나님은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정의를 완성하시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궁극적인 승리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의인은 환경이 아닌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과 약속을 붙잡고 살아야 한다.
2장은 또한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이 담겨 있다. 교만하고 탐욕스러우며 폭력으로 지배하는 바벨론은 결국 망하게 될 것이다. 이 경고는 유다 백성뿐 아니라, 오늘날 세상을 향한 경고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결코 악을 묵인하지 않으신다. 심판은 더디 이루어질 수 있지만, 반드시 온다.
3장 – 찬양과 신뢰의 고백
하박국은 이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그는 더 이상 불평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노래하는 자가 된다. 3장은 시적인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박국의 기도이자 찬양이다. 그는 과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역사, 홍해를 가르시고, 땅을 진동시키시며, 악을 심판하셨던 그 날들을 기억한다. 그 기억 속에서 현재의 고난을 견딜 힘을 얻는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고백한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3:17-18)
이 고백은 단순한 신앙적 수사가 아니다. 현실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무화과나무는 열매 없고, 양은 없고, 소도 없다. 그러나 하박국의 시선은 달라졌다. 그는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해도, 하나님을 신뢰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는 영적 성숙의 절정이라 할 수 있다.
3.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 질문이 믿음으로 자라날 때
하박국은 현대 신앙인에게 아주 현실적이고 깊은 메시지를 준다. 우리는 여전히 질문한다. 왜 선한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는가? 왜 부정직한 자가 승승장구하는가? 왜 기도는 응답되지 않는가? 하박국은 그런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그런 질문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갔다. 그리고 그 질문이 끝내 믿음으로 자라나고, 신뢰로 열매 맺게 되었음을 증언한다.
신앙이란 모든 것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해되지 않아도 멈추지 않고 하나님께 묻는 것이다. 하박국은 우리에게 말한다. ‘질문은 믿음의 적이 아니다. 오히려 믿음의 출발점일 수 있다.’
그리고 하박국의 마지막 고백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다. 상황이 좋을 때 기뻐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상황이 어두울 때, 아무런 열매가 없을 때, 오직 하나님 때문에 기뻐할 수 있는가? 하박국은 그 자리까지 나아갔다. 그는 신앙이란 삶의 조건이 아닌, 하나님 그분 자체에 뿌리를 내리는 것임을 보여주었다.
4. 복음 속의 하박국 – 신약의 중심을 꿰뚫는 한 구절
앞서 언급한 하박국 2:4,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은 단지 당시 유다 백성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는 신약 전체, 나아가 교회 역사 전체에 영향을 미친 복음의 문장이다.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붙잡고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선포했다. 마르틴 루터는 이 말씀 앞에서 오랜 신학적 고민 끝에 종교개혁의 불씨를 지폈다.
즉, 하박국은 비록 소선지자 중 한 명에 불과하지만, 그의 외침은 복음의 핵심을 찌르고 있다. 하나님은 믿음을 보시고 그를 의롭다 하신다. 그리고 믿음으로 사는 자는 환경에 좌우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살아간다.
하박국은 그 삶으로 이 진리를 보여준 자다. 그는 현실 앞에 무너진 듯 보였지만, 끝내 하나님을 붙들었다. 그의 이름처럼, 그는 하나님을 껴안았고, 하나님의 정의와 인자하심을 함께 품었다.
하박국, 오늘 우리를 위한 선지자
하박국은 단지 과거의 인물이 아니다. 그는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그가 외쳤던 질문은 오늘도 울려 퍼진다. 그러나 그의 결단 또한 오늘 우리에게 도전한다. 이해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멈추지 말아야 한다.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믿어야 한다.
신앙은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설명되지 않아도 하나님을 붙잡는 것이다. 하박국은 그것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그는 작지만, 결코 작은 선지자가 아니다.
그는 질문으로 시작했지만, 찬양으로 끝났다. 그것이 진정한 믿음의 여정이다.
하박국처럼 살아가자. 질문을 멈추지 말고, 하나님을 기다리자. 그리고 마침내, 찬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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