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선교여행
1차 선교여행
글라우디오 황제 기간 중에 천하에 흉년이 들어 기근이 심하였을 때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부조금을 마련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에 맡겨 예루살렘의 장로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나아가서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지시에 따라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 안수하고 하나님께서 따로 맡기시는 일을 하라고 보냈다. 세계선교를 위한 첫걸음이었고, 바울의 제1차 선교여행이 시작되는 시점이기도 했다. 그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먼저 바나바의 본거지였단 구루로에 가서 복음을 전했다. 그곳 총독 서기오 바울에게서 복음을 전한 일과 그것을 막으려는 마술사 엘루마의 방해를 물리친 일이 있었다.
그리고 사도행전에는 이곳에서부터 사울을 바울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한다. 헬라 문화가 지배하는 이방 지역의 선교를 시작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부터 바울의 주도로 선교 여행길에 들어서게 된다. 늘 바나바와 사울이라고 표현된 것이 이때부터 바울과 바나바로 이름의 순서가 바뀌어 표현되는 것이다. 이 선교여행에서는 배를 타고 지금의 터키 땅인 밤 빌리아 지방으로 가서 복음을 전했다.
비시디아의 안디옥에서는 안식이에 회당에서 바울이 긴 설교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많은 유대인들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이방인들이 그를 따랐고 그다음 안식일에도 복음을 달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그다음 안식일에는 거의 모든 시민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였지만 이런 현상에 시기심이 일어난 유대인들의 반박과 박해로 인해 더 이상 거기에 복음을 전할 수가 없어 그곳을 떠나 이고니온으로 갔다.
그들은 이고니온을 거쳐 루스드라로 가서 복음을 전했다. 거기서 발을 쓰지 못해 걷지 못하는 자를 보고 바울이 "네 발로 일어서라"라고 명하여 그 사람을 걷게 한 일이 있었다. 그곳 사람들은 그런 이적을 보고 바나바를 희랍의 최고이신 제우스로 바울을 헤르메스로 여겨 그들에게 제사를 올리기도 했고, 기가 막힌 바울은 그들을 말려 제사를 못하게 하고 참 복음을 전하였다. 그들이 거쳐온 비시디아의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그들을 박해하던 유대인들이 그곳까지 와서 무리를 충동질하여 바울을 돌로 치게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바울이 죽은 줄 안 그를은 그를 성 밖으로 끓어냈지만 바울은 이러나 그 성에 다시 들어갔다가 그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 다시 그들이 복음을 전했던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자기들이 선교여행에서 하나님께서 함께 이루신 모든 일을 보고하였다.
바울의 1차 선교여행은 끝이 났다.
예루살렘 총회
이 모임은 기독교 역사상 최초로 모인 총회였다. 이 모임에는 초기 기독교의 지도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아무런 조직도 갖추지 못한 시기였지만 그 중심인물들은 물론 사도도 있었다. 먼저 이 모임에서는 소아시아와 그 주변 지역에서의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복음 전파 사역에 대한 바울과 바나바의 보고가 있었다. 자연스럽게 하나님께 감사화 찬양을 드리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 복음을 받아들인 바리새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들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도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만 하고 그들과 구약의 율법을 준행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약의 율법에서 이방인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로 하고 유대교로 철저히 개종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만 하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이방인들이 개종하여 교회에 몰려들어오고 있는다 보고를 들은 일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 특히 율법을 엄격하게 지켜오던 사람들이 수적 열세를 의식하고 이방인들에 대한 그들의 우세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결국 많은 논의가 진행된 뒤에 베드로가 회장 가운데서 일어나 논의를 정리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그가 로마인 백 부장 고넬료와 그의 가족 친지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체험을 사이하면서 그의 의견을 진술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하지 않으시고 오직 믿음만을 보시고 동일한 성령을 부어주셨다도 했다. 하나님께서 구별하지 않으시고 은혜를 베푸시는데 이방인들에게 율법의 명에를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었다.
베드로의 결론적 발언을 기초로 의장격이였던 야고보가 지도력을 발휘하여 문제를 매듭지었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그들에게 할례를 강요하지는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메어 죽은 것과 피를 멀리하라는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매듭을 지었다.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 표는 할례가 아닌 성령은 받는 것 곧 성령께 사로 잡히는 것이라고 구원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궈우너해주시는 은혜를 통해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음을 확실히 밝힌 자리였다.
제2차 선교여행과 제3차 선교여행
바울의 2차 선교 여행으로 지칭되는 선교의 발길은 예루살렘 총회를 마치고 안디옥으로 들어간 바울과 바나바가 얼마간 거기에 머물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친 뒤 그들이 복음을 전했던 각처로 돌아가서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영접했던 형제들이 어떤가를 돌아보자고 제안하면서 시작했다. 2차 선교여행의 중요성은 복음이 소 아시아를 넘어 유럽 세계로 뻗어갈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이미 언급한 것처럼 이 선교여행은 시작부터 어려움이 있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돌아올 때 그들을 따라온 마가의 동행 문제로 바울의 회심 시점으로부터 바울의 초기 선교사역에서 그렇게 협력이 잘 되던 바울과 바나바가 결별한 것이었다. 결국 바울은 실라와 함께 수리아와 길리기아 자방을 시작으로 그의 제2차 선교 여행을 시작했다
바울은 루스드라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 거기에서 디모데라는 신실한 젊은이를 만났다. 그는 그 후고 바울의 가장 친밀하고 믿음직한 동역자가 되었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풍성한 복음의 열매를 거둘 수 있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아시아에서 더 이상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다. 바울과 그 일행의 선교의 발길을 막으시던 성령께서는 그들이 드로아에 이르렀을 때 밤에 바울에게 ““마케도니아 사람을 통해 마케도니아를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고“ 청하는 환상을 보여주셨다. 그들은 바로 그 환상이 그들의 선교사역을 다음 단계로 확장하라는 하나님의 명이라고 결론짓고 곧장 배로 그리스에 속하는 네압볼리로 건너갔다. 그리고 이때부터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가 합류하여 복음을 전했고 더 남쪽으로 내려가서 아덴과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했다. 제 2제2차 전도여행은 이후 안디옥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여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복음은 급속히 확산되었고, 여러 중요한 교회들이 설립되기도 하였다. 바울과 그의 일행은 먼저 빌리보에서 중요한 경험들을 했다. 그들은 거기서 자색 옷감 장사를 하는 자매 루디아를 만나 복음을 전했다. 그녀는 회심한 두에 자기 집을 거점로 삼고 복음사역을 펼치기도 했다. 그곳에서 사역이 나중에 빌립보 교회로 발전했다. 바울과 실라는 거기서 귀신 들린 여종 한 명을 고쳐준 사건으로 빌립보 감옥에 갇혔다. 하지만 하나님의 권능으로 감옥 무이 저절로 열리는 기적과 그 사건을 통해 감옥을 지키던 간수와 그 온 집을 구원하는 놀라운 체험도 했다.
데살로니가에서는 많은 헬라인들과 적지 않은 귀부인들도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야손가 같은 사람은 복음 때문에 감옥에 갇히기까지 하는 것도 보았다. 유대인들이 시기하고 소동을 일으켜 또 복음 사역을 가로막았다. 할 수 없이 그들은 베뢰아로 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곳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훨씬 진지하게 복음을 받아들이고 날마다 성경말씀을 상고해 믿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그러나 데사로니가에서그들을 반대하던 사람들이 거기까지 와서 무리를 선동하여 소동을 피우고 사람들은 바울을 남쪽 아가야 지방의 중심 도시인 아덴으로 가게 했다.
바울은 상업 중심지요 부정과 부도덕이 판을 치는 도시 고린도로 이동했다. 베뢰아에 머물던 디모데와 실라도 이곳에서 다시 합류했다. 이곳에서 1년 6개월을 머물면서 복음을 전했고 거기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라는 동역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고린도에서의 긴 사역을 통해 고린도 교회는 상당히 큰 교회로 성장했다. 그리고 교회의 신자들은 대제로 하류층의 사람들이었다. 체류기간이 끝날 무렵 아가야 지방의 새로운 총독 가릴오가 부임해 왔을 때 그를 대적하는 유대인들이 일어나 바울을 잡아 총독에 게 끌고 가서 고소를 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총독이 그들이 종교적 분쟁에는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 그 일은 일단락되었다. 얼마간 더 머문 바울은 고린도를 떠나기로 했다. 떠날 때 그는 알굴라와 브리스길라를 에베소까지 데리고 가서 그곳의 안부를 물었다. 그 후에 그는 예루살렘을 거쳐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얼마간 머물렀다.
이로써 그의 2차 선교 여행도 막을 내렸고 그의 선교사역의 고향인 안디옥도 더 이상 그의 선교 여정에 등장하지 않는다.